네이버와 시너지 가능성이 없으면 투자도 안한다?
“매년 20건 정도 투자를 하는데요. 이 중 네이버와 바로 시너지가 나올 각이 보인다 하는 팀이 절반 정도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당장 뭘 같이 하면 좋을지 상상조차 안되는, 각이 안 나오는 팀한테 해요. 우리끼린 화이트 스페이스, 아웃라이어 영역이라고 부릅니다. 재밌는 점은, 이 영역에 투자하는건 당장 뭐가 안 나올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잘 올라오고 있어요."
화이트 스페이스?
“퓨리오사AI가 대표적입니다.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인데요. 2016년 처음 백준호 대표를 만났는데, 당시에는 AI칩이라는 개념도 생소했고 이걸 스타트업이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시절이었죠. 사람들이 다들 삼성이나 인텔이 만들어야 하는것 아니냐고 했으니까요. 딥러닝 스타트업 정도가 막 발아하던 시기였습니다. 2016년 퓨리오사AI에 투자했지만 한동안 정말 (네이버와 협업) 각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올라오더군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칩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고, 팬데믹 이후 클라우드 비즈니스가 보편화 됐죠. 국내 기업 사이에서도 이런 수요가 생기고 있고요. 네이버도 하고 있죠. 최근에는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만 해도 사내에 헬스케어 관련 조직이 하나도 없었는데요. 이제는 네이버 본사 차원에서도 디지털 헬스케어에 투자하고 있고, 사내 병원도 생기면서 접점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D2SF는 수수께끼같은 투자조직이네요.
"D2SF가 투자 조직이라고 단순히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한 단어로 딱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데요. 점을 찍는 사람들인거 같기도 하고요. 엄청 큰 도화지가 있다고 쳐 봅시다. 네이버라는 플랫폼을 원으로 그릴게요. 네이버라는 원에서 1m, 2m 앞에 점을 찍는게 D2SF의 일입니다.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는거죠. 원이 점점 커지면 이 점과 만납니다. 점이 만나, 선이 되고 면이 되는거죠. 현실적으로 설명하자면 네이버가 직접 투자할때 생길 리스크를 대신 짊어져주는 조직이랄까요. 특히 사업·기술 담당하는 사내 조직이 투자까지 신경쓰기는 부담스러우니까요. 한편으로는 D2SF가 네이버 사내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네이버와 경쟁이 붙을만한 기술기업의 사업을 우리가 사내에 던져주니까요.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거죠.”
경쟁상대는 역시 카카오벤처스인가요? 요즘은 공동 투자도 꽤 보입니다.
"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6~7년전만 해도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곳들이 별로 없었죠. D2SF 단독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시드투자도 공동으로 들어가는 케이스가 많아졌습니다. 초기 기술기업 입장에서도 보면, 여러 곳이 들어오면 좋죠. D2SF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제한적이잖아요. 우리는 네이버와 함께 성장하는 걸 포커스로 두지, 다른건 상대적으로 우선 순위가 낮죠.”
올해는 어떤 스타트업에 찾아 투자할 생각인지요.
“총 5가지입니다. 네이버와 시너지 바로 나는 분야 2개와 화이트 스페이스 3곳. 우선 네이버 AI인 하이퍼클로바를 위한 AI 분야, 소상공인들을 위한 머천트 솔루션 분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네이버가 중심축을 두는 사업들이죠. 여기에 붙일 기술 기업들을 찾고 있습니다. 화이트 스페이스 분야를 보면 메타버스, 블록체인, 헬스케어 세 분야입니다. 이 안에서도 앱 영역보다는 뒷단의 인프라 기술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앱은 트렌드가 확확 바뀌고 시장도 빨리 변해서 우리가 좇아가기 쉽지 않아요. 이것에 구애받지 않는 기업을 찾는게 기술 투자의 재미죠.”
“초기 기술기업에 투자한다고 D2SF를 엑셀러레이터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엑셀러레이터라는 말 사실 안 좋아합니다. 한글론 ‘성장 촉진제’잖아요. 빨리 키워서 시장에 내보낸다는건데, 이건 자본의 논리에 따른 단어 같아요. 테크팀은 이 문법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릅니다. 누구는 대기만성이고, 누구는 빨리 잘 크고. 기업도 구성원이 하나하나 세포인 유기물인데 다들 각자 체질이 있죠. 여기에 촉진제를 놔서 3~6개월만에 키워 다음 라운드를 돌린다? 기술 영역은 이 문법이 안 통한다고 봅니다. 기술 스타트업은 올라오는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