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크랩에 합류하기 전에 게임 업계에 몸담았던 나는 3D 콘텐츠가 가진 어려움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에 대해 공감과 흥미를 느꼈다. 지금으로 따지면 ESG나 클라우드 산업이 주목받듯이 그 당시 주목을 받았던 분야는 VR·AR산업이었다. 무엇보다 김희관 대표의 VR 산업에 대한 열정, 팀의 사업 능력이 충분했고, 사업도 아이디어 단계가 아닌 어느 정도 구상된 상태라 더욱 믿음이 갔다. 김호민 대표와 이한주 대표(스파크랩 공동대표)를 설득해 더블미를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영입하게 됐다.
2015년 전세계 게임계는 오큘러스(Oculus)사에서 개발한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에 열광하는 시기였다. 이 기기는 기존 디스플레이와 달리 화면과 사용자의 시선을 완전 분리하고 사용자의 시선을 쫓아가는 기능을 갖췄다. 오큘러스 기기를 시작으로 가상현실, 즉 본격적인 VR 시대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머리에 뒤집어쓰기만 하면 가상현실 속에서의 게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유수의 플랫폼 운영사들이 VR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시작했다. 1년 뒤에는, VR 선도주자인 게임 플랫폼 운영사들이 만든 VR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처음 기대와 달리,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게임 업계에 종사한 나는 평소에도 VR 제품에 관심이 많았고, 더블미를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영입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VR 기기를 800달러에 구매했는데, VR을 운영할 만큼 3D 그래픽카드 성능이 높은 PC를 따로 구매해야 한다고 들었을 땐 놀라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 PC는 성능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성능 좋은 PC를 구매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PC의 가격은 2,500달러였다. PC를 사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PC도 함께 구매하게 됐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내가 구매한 VR은 벽 위에 센서를 설치해야만 실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장비를 샀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우선 집안에 설치 가능한 포토그래퍼 라이트 스탠드로 대체하여 장비를 모두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많은 사람이 쉽게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VR이 궁금해서 기기를 사고, 고성능 PC도 사고, 센서 설치 비용까지 들인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이 시장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국내 시장의 경우 VR 헤드셋이나 AR 글라스 등 디바이스 장치가 너무 비싸고, 해외 제품에 의존하여 보급이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도마저 떨어졌다. 투자 업계에서도 VR·AR 분야의 성공사례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기술 개발이나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다. 스파크랩 5기 데모데이에서 더블미가 성공적인 IR을 마쳤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더블미의 미래와 비전은 충분했지만, VR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내려가 후속 투자를 받지 못했었다.
다른 VR·AR 업계의 스타트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어려웠고 하나둘씩 사업을 접어갔다. 하지만 더블미는 달랐다. 처음에 6대의 카메라로 3D 홀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이후에는 2대로, 이제는 1개의 3D 카메라만으로도 고화질 볼류메트릭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했다. 이 기술을 통해 국내와 해외를 오고 가며 약 6년 동안 정부의 연구 과제로 160억 원을 유치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VR 분야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고도화해 나갔다는 점이다. 국내외 가리지 않고 정부 연구 과제를 부지런히 수행하며 더블미는 꿈을 키워왔다. 나 또한 열심히 하는 더블미의 모습을 보며 사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피보팅을 도왔다.